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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의 모습을 보여 준 냉철한 성품의 아리스토텔레스

by 1teamleader 2024. 4. 17.

현실에 충실한 체계적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이 사랑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던 아버지에게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고 반지를 끼거나 머리를 손질하는 등 남달리 몸치장을 했습니다. 그래도 외모가 뛰어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대머리인 데다 눈과 키가 작고 다리는 가늘었습니다. 게다가 혀가 굳어 말도 더듬었다고 합니다. 또한 겁이 많고 현실 도피적이었으며 나약하고 세심한 성격이었습니다.

 

17세 때 아카데미아에 입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20여 년 동 안 플라톤에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찍부터 왕실과 가깝게 지내면서 7년 동안 알렉산드로스 왕자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정신적 세계의 제왕을 스승으로 삼고 현실 정치 세계의 제왕을 제자로 두었으니 그를 행운아라고 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과 뛰어난 재능을 곁에서 지켜본 플라톤은 그에게 ' 책벌레', '아카데미아의 예지' 등의 별명을 붙여 부를 정도로 그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각이라도 한 날에는 그가 도착할 때까지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요.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스승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죽자 그는 독자적인 학설을 주장했고, 아카데미아의 새 원장 자리에 플라톤의 조카가 임명되자 비위가 상해 아카테미아를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거나 교만했던 것 은 아닙니다. 학문적 방법이나 성향이 서로 달랐을 뿐입니다. 플라톤이 천재적 영감을 지닌 시인에 가깝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냉철한 사고를 지닌 산문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에는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한가운데에는 붉은 외투를 걸친 플라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푸른 망토를 걸친 아리스토텔레스가 허벅지에 윤리학이라는 책을 받치고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테네 학당"에서는 이상주의적 철학을 주장한 정열적인 기질의 플라톤과 현실주의자의 모습을 보여 준 냉철한 성품의 아리스토텔레스를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한편 <아테네 학당>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외에도 많은 철학자가 등장해요. 우리가 앞서 알아본 혜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소크라테스도 그려져 있습니다.


구슬이 떨어지면 잠에서 깨어나 사색을 시작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외곽의 작은 숲 속에 리케이온이리는 학원을 세웠습니다. 그는 학원 안에 우거진 나무 사이를 산책하며 강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소요학파(책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제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별난 면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고 합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자는 모습이 특이했다고 합니다. 뜨거운 기름 마케르시를 담은 가죽 주머니를 항상 배 위에 놓고 자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 주머니가 꼭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는 줄곧 위장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이보다 더욱 궁금하게 여긴 것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잠자는 시간을 줄였을까? 그리고 재빨리 잠에서 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아리스토텔레스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청동 구슬이었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청동으로 만든 구슬을 손에 쥐고 그 밑에 그릇을 놓아둔 채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가 스르르 잠들려는 순간 구슬이 떨어져 그릇에 부딪혔습니다. 이 소리에 깜짝 놀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잠에서 깨더니 철학적인 사색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외국 헌법에 관한 자료를 모은다거나 동식물의 표본을 모을 때 제자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테네에서 반마케도니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모독하고 국가의 종교를 위반했다는 죄로 고소당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의연히 독배를 든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시민이 두 번 다시 철학에 죄짓 지 않도록 하기 위해 떠난다."라는 말을 남기고 칼키스로 망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위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을 처음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입니다. 논리학은 올바른 사고를 위한 형식과 방법에 관한 이론입니다 무엇을이 아니고 '어떻게'를 중시합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다른 학문과 달리 논리학에서는 어떻게 해야 오류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가를 다룹니다. 그런데 올바로 사고할 수 없다면 어떤 학문도 성립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논리학적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덕을 강조했습니다. 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중용은 1과 5의 중간이 3이라는 식의 산술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관용과 비겁함의 중용은 용기이고, 사치와 인색함의 중용은 절약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때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식사의 적당량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저마다의 식사량이야말로 포식과 소식의 중용인 이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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