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론에 대한 반대의견
지난 시간에 데카르트의 사상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체가 서로 독립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면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이원론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유하는 능력이 없는 동물은 단순한 기계와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동물이 매질을 당하며 신음 소리를 냈다고 합시다. 이원론에 따르면 이 신음 소리는 감정을 나타낸 것 이기보다는 마치 오르간 건반을 두드렸을 때 울리는 소리처럼 기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동물의 일그러진 얼굴과 애절한 눈동자, 비틀리는 손과 발을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을까요? 따지고 보면 인간 역시 동물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정신과 신체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정신과 신체의 상호 작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결국 데카르트는 적어도 인간은 몸과 마음, 신체와 정신이 결합해 서로 작용한다고 인정하지 않을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뇌의 솔방울샘을 통해 서로 만나 밖의 물리적 자극이 마음속에 감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반대로 마음속에서 일어난 결정이 신체에 전달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 엇갈리는 그에 대한 평가
스피노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립니다. 그는 '신을 모독 한 전형적인 유대인'이면서 성령으로 가득 찬 심오한 철학자' 입니다.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숭배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스피노자는 복잡한 인물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의 아버지는 세 번 결혼해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습니다. 스피노자는 둘째 부인에게서 난 자식이었습니다. 그를 낳아 준 어머니는 그가 6세 때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피노자는 유대교 목사가 되는 꿈을 꾸며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교 신도들이 한 청년을 교회당 입구에 엎드리게 한 후 그를 짓 밝고 들어 가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리에 어긋나는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쫓겨난 그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스피노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에게 거절당한 뒤로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고독한 생애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24세 때 스피노자는 교회에 불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에게 신학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 연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피노자가 단호히 거절하자 그때부터 누군가가 그를 몰래 살피고 조사하는가 하면 해코지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스피노자는 온갖 저주를 받으며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주위 사람은 동네 친구들까지 그를 피했고 셋방조차 빌릴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착한 사람을 만나 다락방에 살게 되었는데 그는 3개월 동안 한 번도 그 방에서 나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안경알을 갈고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틈틈이 책을 썼지만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책은 표지만 바뀌어 여러 곳에서 팔려 나갔고, 독자들이 곳곳에서 격려의 편지와 생활비를 보내왔습니다. 어느 부유한 상인은 스피노자에게 1,000달러를 기부했지만 스피노자는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상인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스피노자에게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스피노자는 할 수 없이 연금 150달러만 받기로 하고 재산은 상인의 동생에게 물려주라고 설득했습니다.
프랑스의 왕인 루이 14세는 스피노자가 쓸 책을 자기에게 바치면 거액의 연금을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스피노지는 왕의 제안도 거절했지요. 한 영주는 독일에 있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철학과 정교수 자리를 제안해 왔습니다. 그러나 교수직을 맡으면 철학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없다고 여긴 스피노자는 안경알을 같고 닦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스스로 거절한 스피노자는 어려운 생활을 이어 나가야 했습니다. 돕겠다는 친구들에게도 꼭 필요한 정도의 도움만 받았습니다. 번지투성이인 작업장에서 안경알을 손질하던 스피노자는 폐병에 걸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외롭고 고요했던 45년의 짧은 일생이었습니다.
스피노자의 주요 저서 에티카
그가 남긴 주요 저서로는 '에티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라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의 원고를 일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책상 서랍에 꼭꼭 숨겨 두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죽은 후에 원고가 분실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은 그가 죽은해에 에티카를 출간했습니다. 에티카 외에도 스피노자의 중요한 저서들이 잇따라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좋말이 올지언정,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정신과 물체는 신의 두 가지 속성일 뿐, 하나의 실체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가지성 질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연장이란 공간의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공간 속에 위치하는 물체의 성질을 의미합니다. 스피노자는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가지 실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가운데 두 가지 성질이 모두 나타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스피노자는 '신은 곧 자연이다. '라는 범신론을 주장했습니다. 신은 모든 사물의 밑바탕에 자리하면서 모든 존재를 포함하므로 곧 자연이라는 것입니다. 정통 그리스도교에서는 범신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피노자는 "신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천사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영혼은 다만 생명일지도 모른다. 구약 성경에서는 영생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라고 중얼거리고 다녔습니다. 스피노자가 유대교 교단에서 관문을 당한 이유가 바로 이런 도발적인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남긴 "내일 지구의 좋말이 올지언정,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라는 말 때문에 흔히 그가 낙천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의 철학에는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 체념이 담겨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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