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칸트 이전과 이후로 니뉜다, 칸트의 비판 철학
독일의 철학자 칸트를 시작으로 철학자들은 통일적인 체계 안에서 존재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 칸트와 독일 관념론자들이 맨 먼저 했던 일은 경험론, 회의주의, 공리주의, 유물론의 학자들이 부정하거나 비판한 진리, 윤리, 종교 등 여러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칸트의 철학은 경험론과 연결되지만 신, 영혼 윤리, 예지계 등과도 연결됩니다. 칸트의 저서로는 인식의 과정을 연구한 '순수 이성비판'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 밖에 윤리의 문제를 다룬 '실천 이성 비판'과 예술 분야를 살펴본 '판단력 비판', 종교와 관련된 '단순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도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정각 5시에 일어나는 칸트
칸트는 동프로이센의 항구 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러시아 연방 서부에 위치한 칼리닌그라드의 옛 이름입니다. 이곳은 원래 독일의 영토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소련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1945년에 소련령이 된 것을 기념해 당시 지도자였던 칼리닌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라고 개명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탓에 지금도 이곳의 반환 문제가 독일과 러시아 사이의 외교 안건입니다.
칸트의 아버지는 말을 타거나 부리는 데 쓰는 기구를 만드는 사람 이었습니다. 칸트는 9년 동안 가정교사로, 15년 동안 시간 강사로 일한 끝에 46세가 되어서야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매우 충실하고 유쾌하게 강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격상 까다로운 구석이 있어서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는 학생을 보면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칸트는 1781년에 발표한 순수 이성 비판으로 갑자기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칸트는 키가 160cm도 되지 않았고 기형적인 가슴을 가진 허약한 체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칸트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규칙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칸트의 움직임을 보고 시곗바늘을 맞출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인이 된 칸트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매일 아침 정각 5시에 일어났습니다. 칸트의 하인은 정확히 4시 45분에 그를 깨웠습니다. 하인은 주인이 일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칸트가 자기를 좀 놓아두라고 부탁할 때도 반드시 깨워야 한다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에는 서재에서 공부를 했고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는 강의를 했습니다.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논문을 작성하는 등 주로 연구 시간으로 활용했습니다. 점심식사 때는 언제나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칸트는 손님과 철학 외의 다양한 주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였습니다. 그 후에는 어김없이 산책을 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칸트는 다시 연구에 몰두하다가 밤 10시에 정확하게 잠자에 들었다고 합니다. 칸트가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시곗바늘처럼 어김없던 일과를 어기고 말았다는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나는 무식한 천민을 경멸했다.
루소가 이런 나를 바로잡아 주었다.....
나는 그에게서 인간을 존경하는 법을 배웠다."
라는 칸트의 고백을 통해 그가 매우 겸손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칸트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았습니다. 일생 동안 검소하게 생활한 덕분에 상당히 많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80세에 그가 숨을 거두자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졌어요. 칸트의 유해는 그가 평생 근무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캠퍼스 안에 안장되었습니다. 칸트가 철학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19세기 철학의 대부분이 칸트 사상의 수용과 전파 또는 반론과 변형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칸트가 남긴 주요 저서에는 순수 이성 비판, '도덕 형이상학 원론', '실천 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단순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영구 평화론'등이 있습니다.
인간의 인식 능력을 논하는 칸트
순수 이성비판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인간의 인식을 다루었습니다. "순수 이성 비판'은 선협적 감성론과 선험적 분석론, 선험적 변중론으로 나누어집니다. 선협적 감성론에서는 감성 능력을, 선협적 분석론에서는 오성 능력을, 선험적 변중론에서는 이성 능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감성이란 외부 대상이 일으키는 인간의 어떤 능력을 말합니다. 눈 앞에 분필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분필은 우리 눈을 자극해 시각을 일으킵니다. 분필을 만질 때는 손을 자극해 촉각을 일으킵니다. 이때 시각과 촉각이 일어나게 하는 인간의 능력, 그것이 바로 감성입니다. 그래서 감성을 보통 수용성, 즉 받아들이는 능력이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이곳'이라는 공간 속에서 경험이 생깁니다. 즉 인간의 경험적 직관이 성립되려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사건과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즉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감성이 밖에 있는 재료를 경험할 때 비로소 구체적인 직관이 성립합니다.
감성과 오성의 조화로 인식되는 참된 인식
인간에게는 감성 말고도 오성이라는 인식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은 감성을 통해 대상을 받아들이고 오성을 통해 대상을 생각합니다. 인간은 감성을 통해 인식의 재료를 받아들이지만 참다운 인식이 성립되려면 반드시 오성을 통해 사고해야 합니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참다운 인식은 감성의 수용성과 오성의 자발성이 결합되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분필을 인식하려면 분필이라는 대상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 합니다. 감성을 통해 분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감각된 내용은 사고를 통해 정리 해야 합니다. 오성을 통해 개념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칸트의 주장이 잘 나타난 구절이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입니다. 우리의 인식이 언제나 감성과 오성의 결합으로 성립된다면 감성적 직관이 주어지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인식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어코 알려고 할 때 선험적 가상, 즉 착각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세계는 부한 한지, 신은 존재하는지 등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끝까지 알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서로 모순되어 어느 쪽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이른바 이율배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실천적 도덕적 세계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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