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도발하는 새로운 철학의 등장
봉건 사회에서는 농업이 중심이었습니다. 중세의 농업은 농노가 봉건 영주의 토지를 경작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자본주의가 싹트면서 중세의 농업은 서서히 막을 내렸습니다. 이 시기에는 지식과 경제력을 갖춘 부르주아지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해 이들을 중심으로 경제가 발전했습니다. 경제를 원활하게 다스리려면 국가의 권력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왕의 권한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왕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민족의식이 싹텄습니다. 그 결과 유럽 전체를 '그리스도교적 세계 제국'이라고 여기던 유럽 국가들의 결속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까지 없었던 법이론과 국가 이론이 생겨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사상가, 마키아벨리 모든 인간은 악하다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인 마키아벨리는 도덕규범과 현실 정치를 구분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군주론을 비롯한 여러 책을 통해 모든 정치행위의 목적은 국가의 자기 보존과 권력 장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의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는 마키아벨리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마키아벨리즘 이란 국가의 유지와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허용된다는 정치사상입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처음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철학적 배경은 마키아벨리는 "모든 인간이 악하다."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은혜를 모르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과거에 받았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기억하고 있더라도 갚으려고 노력하 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지배자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만 충성을 다하고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때는 재빨리 물러서서 배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혹 선을 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득이하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선을 행하는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보복하려고 하는 악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악하고 이기적인 인간을 지배하려면 무엇보다 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억세게 대드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몸가짐이나 행동을 삼가기보다는 무분별하게 행동해야 하고,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덤벼야 하며, 마지막에 승리하려면 오직 기만, 간계, 배신, 폭력 등의 수단을 써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국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도덕이나 정당성이 아니라 군사력과 정치상의 책략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평화 협정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그 많은 전쟁이 있었을 리 없다는 점에서 마키아빌리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평화는 팽팽한 힘이 서로 마주하고 있을 때만 유지되는 법입니다. 국가 간의 힘이 균형을 잃었을 때 언제나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 왔고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군주여, 나라를 지키려면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능력에 대해 날카롭게 충고했습니 다.
"군주는, 특히 새롭게 군주가 된 자는 미덕만 행하면
나라를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신앙심을 잊어야 할 때도 있다.
군주는 상황이 달라졌을 때 그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되도록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저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무슨 짓을 하건 칭송받게 되고
위대한 군주로 만들어질 것이다."
군주는 국민의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정권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입니다. 신뢰받지 못한 정권은 위태롭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구성원들의 믿음을 얻어 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그 방법이 기만이어도 상관없고, 다만 기만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군주가 아부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누군가 옳은 말을 하더라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을 국민에게 일부러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에게 냉혹함을 심어주었던 시대상
그는 왜 이처럼 냉혹한 사상을 주장했을까요? 마키아벨리는 고향인 피렌체를 중심으로 조국이 통일되어 위대한 국력을 되찾을 수 있기를 열망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이탈리아가 쪼개지고, 대외적으로는 유럽의 강대국들이 이탈리아를 나누어 가지려고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서 그는 분노하고 절망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철학자로서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궁리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냉흑한 현실을 바로 보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에 담아내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후세의 학자들은 마키아벨리가 현실에 대해 냉철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점,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현한 점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연 과학자가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을 관찰하듯, 마키아벨리는 모든 도덕적 선입관을 배제하고 유럽의 정치를 관찰했습니다. 특히 귀납의 방법으로 통치자의 처세술에 대한 법칙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이런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수많은 권력자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가 권력을 잃고 쫓겨난 시기에 피렌체 공화국에서 서기를 맡았습니다. 4년 후에는 서기장으로 승진해 로마 교황, 각국의 왕과 고위 관리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마키아벨리가 권모술수를 써서 남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상 그럴 만한 지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겁이 많았던 그가 당시 막강했던 메디치가의 신임을 얻기 위해 '군주론을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메디치가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명망이 높았던 가문입니다. 1400년부터 약 300여 년 동안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천재 화가들을 후원하고 학문과 예술을 장려해 르네상스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문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