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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의 철학의 시작, 근세철학

by 1teamleader 2024. 4. 21.

이번 글부터는 근세 철학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시기의 서양 철학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인격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개인주의, 신학적 배경이나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 자유로운 토론,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에 기초한 합리적인 학문 연구, 죽은 후를 중시하는 종교적 사고에서 벗어나 현세에 집중하는 경향 등이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종교적 색채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이 생겨나게 된 데에는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자연 과학의 발달, 종교 개혁 등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시기에는 마키아벨리나 홉스의 사상처럼 다소 도전적인 사상도 등장했습니다. 아울러 인간의 선천적 인식 능력을 강조하는 합리론과 후천적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론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것들을 종합한 사람이 그 유명한 칸트입니다. 칸트를 시작으로 헤겔에 이르는 시기는 독일 관념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 관념론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주관과 객관, 의식과 대상, 자아와 자연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과 근세철학의 태동

철학에는 그 무렵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든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세 철학이 생겨난 그 시점에는 모든 관심이 신에게로 쏠렸던 중세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이 강조되는 근세로 넘어가는 인류 역사를 뒤흔든 여러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지적, 창조적 협력 믿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와 이 세계를 움직이는 주체가 신이 아니라 는 것을 보여 준 자연 과학, 권위와 형식에 치우친 종교는 변화해야 한다는 문과 의식에서 시작된 종교 개혁 등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 반중세적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주장, 인문주의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깨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한 사상적 흐름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성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수사학, 시학, 역사학, 윤리학 등 인간적인 학문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데 힘썼습니다. 그 결과 신에게 가려졌던 '인간적인 것'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이 시기의  표적인 인문주의자들로는 신곡을 쓴 단테와 칸초니 에레를 쓴 페트라르카,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 등 을 꼽을 수 있습니다.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는 신학적 색채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아비농의 교황청에서 성직자로 근무하던 페트라르카는 라우라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사랑의 서정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서정시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페트라르카가 쓴 칸 초니에레는 그의 감정이 고스란 히 담긴 시집으로,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페트라르카의 제자 인 보카치오는 단테의 신곡과 견주어 '인곡'이라고도 불리는 단편 소설집 '데카메론'을 썼습니다. 이 작품을 최초의 근대 소설로 보고 있습니다. 데카메론은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의 한 별장에 모인 숙녀 7명, 신사 3명이 10일 동안 머물며 나무 그늘에 앉아 나눈 대화를 적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 사람이 한 가지씩, 하루에 열 가지의 이야기를 나눈 후 다음날 진행할 이야기의 주제를 정하고 헤어집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노래를 부르고 잡자리에 듭니다. 데카메론의 주제는 사람과 지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인간의 억누를 수 없는 욕망, 염치를 모르고 불량한 짓을 라며 돌아다니는 사람의  빈틈없는 교활함, 기사의 고상한 재치 등을 다루었습니다.  

 

문학에서 점차 퍼져 나가는 인문주의 사항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들 인문주의는 문학 외에 사상적 영역으로도 확산되어 갔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사상가로는 에라 스미스와 후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에라 스미스의 작품으로는 당시의 세상을 풍자한 '우신예찬'이 유명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철학자와 신학자들의 쓸데없는 논쟁과 성직자들의 위선, 교회의 부패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후텐 역시 당시 교회와 로마 교황, 성직자의 타락을 격렬하게 공격했습니다. 이 시기에 위대한 철학자들도 등장했는데, 그들의 철학에서도 시대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인 몽테뉴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을 대표합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된 그는 법관으로 일하다가 앙리 4세의 시종이 되었습니다. 그 후 보르도 시장을 지내다가 물러나 몽테뉴 성으로 돌아온 그는 수상록을 완성했습니다. '수상록'을 통해 몽테뉴는 프랑스에 모럴리스트(moralist, 16~18세기에 인간성을 탐구해 수필이나 격언으로 표현한 프랑 스 작가들을 일컫는 말)의 전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의 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몽테뉴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사물을 바라보고자 했으며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시도했습니다.

 

기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세속적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몽테뉴 사상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브루노는 "신이란 초월적 위치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활력을 불어 넘는 원리로 작용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반교회적인 주장을 펼친 브루노는 교회와 마찰을 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철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가 7년 동안 감옥 생활을 거친  뒤 로마의 한 광장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 같은 브루노의 일생은 그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근세 초기의 인문주의자들은 그리스ㆍ로마 시대에 꽃피었던 사상을 되살리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 문화에 인간중심적 사고가 모범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이 자기 궁정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존경과 애착은 자아 사상으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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