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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을 설명하려는 철학의 노력 스콜라 철학

by 1teamleader 2024. 4. 18.

신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 스콜라 철학

스콜라 철학이라는 명칭은 중세 수도원 학교의 교사나 학생을 일컫던 '스콜라스티쿠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성직자들을 교육하는 수도원 학교를 통해 스콜라 철학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이미 진리라고 받아들여진 그리스도교 교리의 학문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리스도교 교리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을 뿐이지 이성적으로 진리인가 아닌가를 검토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대표적인 인물은 아퀴나스입니다. 그는 신앙과 지식, 신학과 철학의 영역을 '은총의 빛'과 '이성의 빛'이라는 개념으로 확실히 구분했습니다. 이로써 비로소 두 영역이 모순을 극복하고 함께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보편은 실제 존재하는가 생각으로만 존재하는 것 인가


스콜라 철학에서는 보편논쟁으로 불리는 격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보편 논쟁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존재 보다 보편 개념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실재론과 보편 개념이란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이름에 불과하다고 보는 유명론의 대립을 말합니다. 실재론에서는 "갑돌이, 을돌이, 병돌이와 같은 개별자는 언젠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들을 총괄하는 보편 개념인 인간'은 영원히 존재하므로 후자가 터 중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유명론에서는 "실제로 눈앞에 존재하는 갑돌이, 을돌이, 병돌이가 더 중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교회에서는 실재론을 지지합니다. 유일신으로서의 하나님과 인류라는 보편적 실재,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인류가 아담의 죄를 물려받았고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실재론 쪽이 더 유리합니다. 실재론의 입장을 취한 학자는 에리우게나와 안셀무스입니다.

실제론의 두 철학자 에리우게나와 안셀무스


아일랜드 출신의 스코틀랜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에리우게나는 "인간의 구원은 예정되어 있지만 죄는 예정되어 있지 않다."라고 주장해 교회와 대립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를 이단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안셀무스는 에리우게나와 함께 스콜라 철학의 시조로 불립니다. 그는 15세 때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안셀부스는 꾀를 내어 병이 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앓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눈치를 심하게 보았던 수도원장 때문에 일이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안셀무스는 다시 건강을 회복해야 할 수밖에 없었고 곧바로 병에서 나았습니다. 어른이 된 안셀무스는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있는 베크 수도원에 들어가 부원장 자리를 거쳐 대수도원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명성이 높아져 영국의 캔터베리 대 주교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눈 밖에 나게 되어 몇 년 동안 영국에서 추방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왕은 그가 로마로 여행하려 할 때 재산을 외국으로 빼돌리려 한다는 혐의를 씌워 그의 짐을 뒤지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안셀무스는

"맹목적인 신앙보다는 지식을 갖춘 신앙이 더 좋다. 나는 믿기 위해 알려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믿는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 그의 말 또한 곧잘 인용됩니다. "신은 절대적으로 완전하다. 완전하다는 것은 실재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는 내용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안셀무스에게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는 명칭을 붙여 주었습니다.

유명론의 대표철학자 로스켈리누스


유명론의 대표는 프랑스의 신학자인 로스켈리누스입니다. 그는 유명론을 삼위일체설에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삼위일제설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에 담겨 있는 하나의 신적 실체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로스켈리누스는 성부, 성자, 성령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을 총칭하는 하나의 신적 실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보편 개념이라고 보았습니다. 교회는 로스켈리누스가 유일신을 부정하고 삼신론을 주장한다고 여겨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공의회에서는 로스켈리 누스를 이단이라 판단하고 그에게 주장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로스켈리누스는 할 수 없이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견해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이 일로 그는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교회와 화해하고 프랑스로 돌아와 강의 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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