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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이요 숫자이며 변화하지 않는다. 고대철학의 계속

by 1teamleader 2024. 4. 16.

세상 만물의 근원은 불(Fire)이다.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는 소아시아 연안의 에페수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다수결로 친구가 추방당하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에 반대했습니다. 다수결을 따르는 대중을 경멸하며 세상에 넌덜머리를 내던 헤리클레이토스는 결국 산속으로 들어가 풀과 잡초로 끼니를 이어 갔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이리저리 떠돌기 때문에 정지된 것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같은 물결을 탈 수 없다."

 

라는 말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흘러가는 물속에 발을 담갔다가 꺼낸 후 다시 집어넣어도 그 물은 처음의 물이 아닙니다. 처음의 물은 이미 물아래로 흘러가 버렸고, 현재의 물은 상류에서 내려온 새로운 물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 이 이미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듭니다.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계에 통일적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끊임없이 변하는 표면 뒤에 단일성, 즉 통일적 법칙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만물의 근본을 불로 보았습니다. 불이 바탕이 되어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근본 법칙을 '대립의 통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불은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영혼 속에 담겨 있는 '불'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영혼까지 설명할 수 있는 불


'혼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촌의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 가운데 한 사람이 "어젯밤에 대추나무집 할아버지가 돌아가 셨대요."라고 하자 다른 여인이 물을 치면서 "그 집에서 새파란 혼 불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혼불이 나간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혼불이라는 유명한 소설도 있습니다. 최명희가 쓴 "혼불은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장편 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어두운 시절에 전라도의 한 유서 깊은 문중을 무대로 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종부 삼대의 삶과 사촌인 강모와 강실의 비극적 사랑, 자연, 우주, 인간에 대한 고찰 등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것은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

우리들에게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더 잘 알려진 피타고라스는 "수"야말로 생겨나고 변화하는 사물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1은 점이고 2는 선, 3은 면, 4는 입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귀에 아름답게 틀리는 협화음과 불행하게 들리는 불협화음은 일정한 수학 비율로 결정됩니다. 협화음은 배열이 잘 이루어진 것이고, 불협화음은 그 비열이 잘못되어 조화가 깨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악기를 한번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현악기는 현의 길이나 굵기가 음의 높낮이를 결정하는데 '길이와 굵기'는 수적인 것입니다. 하늘에 떠다니는 별들이 궤도를 따라 일정한 주기로 움직이는 현상 역시 시간적, 공간적으로 수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천체는 왜 하나같이 원운동을 할까요? 모든 도형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 원이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에게해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스승인 탈테스의 주선으로 이집트에서 공부하던 중 페르시아의 포로가 되어 바빌론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피타고라스는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토네에서 비밀 종교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이 교단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정해 놓고 신도들에게 금욕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규율 기운 데는 ' 동물의 살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규율은 영혼 불멸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곧 인간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나 동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먹는 동물의 살 속에는 자기 할머니의 혼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세상은 변화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엘레아학파 크세노파네스와 파르메니데스

엘레아학파의 선구자 서양 철학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성과 변화를 강조하는 것으로 헤리클레이토스의 만불유전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고정된 존재에만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서해안에 위치한 그리스의 식민 도시인 엘레아에는 변하지 않는 존재에 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세 철학자가 살았습니다. 바로 엘레아학파의 선구자인 크세노파네스와 학파의 창설자인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학파를 발전시킨 제논이었습니다.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가 쓴 신화에는 여러 신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크세노파네스는 "오직 하나의 신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은 최고의 존재를 뜻하므로 오직 하나일 수밖에 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나무는 오직 하나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크세노파네스는 "존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다."라는 엘레아학파의 사상을 싹트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엘레아 학자의 대표적 인물인 파르 메니데스는 "존재만 있고, 무는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는 이 명제가 파르메니데스 철학의 근본 전제입니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운동과 변화를 부정했습니다. 즉 모든 운동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인 운동장이 있어야 가능한테 파르메니데 스는 공간으로서의 무를 부정하기 때문에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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