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시간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철학자이기에 철학자들의 대표격으로 이렇게 유명해지게 되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워낙에 유명한 철학자이기 때문에 이번 한 번으로 알아보는 것은 어려우니 두 번에 나누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 악처를 둔 건장한 추남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조각가인 아버지와 산파(산모가 아이를 쉽게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얼굴은 크고 둥근 데다 이마가 벗어지고 눈은 툭 불거졌으며 코는 뭉툭 하고 입술은 두툼했습니다. 키가 땅딸막하고 배가 나와 걸을 때면 오리처럼 뒤뚱거렸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추남에 가까웠지만, 몸은 건강한 편이어서 주위와 더위를 잘 참았고 밤새워 술을 마셔도 끄떡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소크라테스는 가족에게 소홀하고, 생계를 꾸리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교육하는 데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는 대가 없이 제자들을 가르쳤고 저녁 한 끼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대가로 많은 보수를 받던 여느 소피스트들과 달랐지요.
소크라테스는 질문과 응답을 통한 대화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쉽고 단순한 문제로 시작했지만 점차 어려운 문 제로 넘어갔습니다. 이처럼 진리를 탐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문답법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는 그의 어머니의 직업인 '산파'에서 따온 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산파는 아이를 낳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할 수 있을 뿐 출산이 더디다고 해서 대신 아이를 낳아 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아이는 산모의 힘으로 낳아야 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도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구 해야지 스승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철학을 연구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남편을 못살게 굴었고 심지어 시장 한가운데서 소크라테스의 옷을 마구 잡아당겨 찢기까지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붓고는 시치미를 뗐다는 일화는 미술 작품으로도 많이 묘사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크산티페를 무작정 악처라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집안의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했다면 크산티페도 상냥한 아내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희대의 유행어, "너 자신을 알라"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카이레폰이 그리스의 종교적 중심지인 델포이 신전에 갔습니다 델포이 신전은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km 정도 떨어진 파르나소스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이 놓아주면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날아가게 했더니 독수리들이 델포이에서 서로 만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를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고 '세계의 배꼽', 즉 '올림푸스'라고 부르며 델 포이에 신전을 지었습니다. 델 포이 신전의 주인은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인 아폴론입니다. 그는 올림포스 12 신 가운데 하나며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쌍둥이입니다. 예술의 신, 태양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아폴론은 예언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폴론에게 신탁(신이 사 탑을 매개자료 삼아 자신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불음에 대답하는 일)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델포이 신전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주변국의 권력자들이 전쟁의 승패를 미리 알기 위해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신탁은 신전의 내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보통 50세가 넘은 무녀가 광기 어린 환각 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전했습니다.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남자 신관의 해석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때 신관은 신탁을 구한 사람이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해석해 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신탁은 신의 뜻이라기보다 신탁을 구한 사람의 소망이나 의지였는지도 모릅니다.
아폴론에게 신탁을 구한 카이레폰은 "아테네에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자는 없다."라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평소 자기 자신을 무지한자라고 말하고 다닌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전해 들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름난 현자들이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아는 것이 많은 것처럼 행세했을 뿐이었습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진리 앞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델포이 신전의 양쪽 기둥 밑에 새겨진 "너를 알라."라는 구절을 자주 외우고 다녔습니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죽을 수밖에 없는 너희의 한계를 똑똑 히 알라!'라고 합니다. 신이 자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들에게 내린 경고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너 자신을 알 라."라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름난 현자들보다 적어도 한 가지는 더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폴론이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 한 자는 소크라테스"라는 신탁을 내린 게아닐런지요. 자신이 현자라고 믿는 사람들의 입 장을 '무지의 무지'라고 표현한다면 소크라테스의 경우는 '무지의 지'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얼굴은 조금 못생기게 태어 났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에 겸손까지 겸비한 소크라테스가 왜 길아성 같은 철학자 중에서 도 스타(Star)가 되었는지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번에 이번글에 이어서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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